유래및연혁

유래

유래1 광재골

쟁골의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유래2 느티울골

오금자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900m길게 자리한 느티울골의 논이 기름져 고래실 농이었다고 한다. 지형은 남고북저형으로 동·남·서의 세 방향이 해발 약 100m의 밤바위산과 그지맥으로 둘러 쌓였으며, 안골의 논은 남쪽이 해발 90m로 높고 북쪽 둥근봉 너머의 낮은 곳은 해발 49m 로 낮아 현재의 3단지, 2단지의 물이 북쪽이 시청 앞으로 흘렀다. 지명은 둥근봉 서쪽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그루 있어 느티나무괴(槐)자와 골곡(谷)자를 써서 '괴곡동' 또는 '느티울'이라 불렀다.

유래3 동산

마을 한가운데 있는 산을 동산 또는 '동메,' '동미'라고 한다. 이곳은 군포시청 뒷산으로 해발 114.8m이다.

유래4 쟁골

월구지고개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유래5 쟁골마을

오금자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과거에는 '느티울' 즉 '괴곡동'에 속했던 마을이라고 한다. 현재의 위치는 군포고등학교 앞 부근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조선 초기 한성부사를 역임한 송복산의 묘를 이곳에 쓴 후 그의 둘째 아들인 송찬이 세조 2년(1456) 단종이 폐위·사사되자 관직을 사절하고 묘아래 두어칸 초려(草廬)를 짓고 그 문과 창을 한양 쪽인 북향으로 향하게 하여 임금을 잊지 않았다는 뜻을 표명하였다. 빈객들조차 들이지 않고 글을 보내 스스로 즐기며 자기의 지위나 행적 같은 것을 숨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이 과천처사(果川處士)라 불렀다. 그 후 그의 후손인 여산 송씨 문중에서 초려를 개축하여 재실(齋室)로 사용하였다. 이후부터 이 인근을 재궁골이라 불렀는데, 후대에 내려오며서 '쟁골'로 부르게 되었다. 이곳에 있던 산소들이 지금은 시청 뒤에 있는 동산으로 이장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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