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및연혁

유래

유래1 거북바위

안양군의 신도비(神道碑)가 거북바위 위에 서 있다. 이 바위는 본래 산본고등학교(1994년 3월 1일 개교) 자리에 있었는데, 산본신도시 개발로 부득이 다음과 같이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였다. - 이전기간 : 1992년 7월부터 1992년 12월까지 6개월간 - 이전거리 : 약 50m - 중 량 ㅇ 머리부분 : 47t ㅇ 중체부분 : 270t ㅇ 후체부분 : 340t ㅇ 도 합 : 657t 이와같이 거북바위의 중량이 거대하며 실제 길이를 측정한 결과 머리부분 : 길이 4m, 폭 2.1m, 높이 1.8m, 중체부분 : 길이 3.8m, 폭 8.9m, 높이 2.6m, 후체부분 : 길이 6.7m, 폭 9.6m, 높이 2.9m, 꼬리부분 : 길이 1.4m, 폭 3.3m, 높이 1.6m였다. 특히 비석의 받침돌이 귀부(龜趺)로 되어 있는데, 위와 같이 거대한 자연석의 귀부는 드문 일로서 자연미와 인공미가 겸비된 훌륭한 신도비이다.

유래2 골안고개

광정과 골안사이에 있는 작은 길로 산기슭에 있어 일명 '산실고개'라 부르기도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하여 작은 길이고 산기슭이고 없다. 산본중학교 근방에서 곡란초등학교로 가는 사이에 있는 언덕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곳은 지형도상으로 해발 75m정도 되는 언덕이었다.

유래3 관모봉

관모봉(426.2m)은 산본을 감싸고 있는 수리산 봉우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봉우리이고, 이 봉우리 밑의 동쪽 골짜기가 산본2동의 골안이다.

유래4 노랑바위

산본리 수리산 산신제당 위인(서쪽) 관모봉 중턱에 있다. 이 바위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옛적에 어느 임금이 있었다 그에게는 불혹을 넘어도 왕손을 이어갈 왕자가 없어 근심하던중 하늘이 감복했는지 기골이 장대한 왕자가 태어났다. 왕자가 세 살이 되던 해 전란이 일어나자 급기야는 궁궐을 떠나 강화도로 향하는 나룻배를 탔는데 폭풍우를 만나 배가 난파하려는 순간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왕자를 태우고 육지로 나와 은신처를 찾던중 관모봉 중턱에 이르렀다. 거북이의 등에 업혀 며칠을 굶다보니 왕자의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왕자에게 드릴 음식을 구하기 위해 거북이가 마을로 내려가자 거북이의 뜻을 모르는 왕자는 분한 마음과 배신감에 사로잡혀 바위를 향해 힘껏 주먹으로 내려쳤다.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위가 무너지면서 왕자를 덮쳤다. 이에 왕자는 노란 피를 흘리면서 숨을 거두었고, 마을로 내려간 거북이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바위를 맞아 죽었다. 그 후부터 이 바위를 노랑바위라 불렀고, 광정마을에 안양군의 신도비가 세워진 바위를 '거북바위'라 불렀다.

유래5 도장공원

도장공원은 산본역에서 안산쪽을 향하여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아담한 산이다. 해발 90.5m인 정상에는 8각정이 있고, 전망이 좋아 오르내리는 이들이 많다.

유래6 도장굴골

6, 7, 8단지의 경계지점인 롯데슈퍼 앞 4거리부터 4단지와 5단지 사이로 해서 도장터널 좀 못미치는 지점에 이르는 구간이다. 도장굴골의 '장'자를 감출장(藏)자 또는 긴장(長)자를 쓰는데, 주변의 지명 중 '원숨을골'이라는 곳이 있다. 이와 연계를 짓는다 마감출장자가 옳을 것 같고 또 골의 길이가 15Km나 되어서 길다는 긴장자도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유래7 동적골

6, 7, 8단지의 경계지점인 롯데슈퍼앞 4거리에서 도장굴골과 마주하면서 8단지와 9단지의 경계인 차도를 따라 수리초등학교 앞(옛날의 둔전마을)에 이르는 길이(옛날의 골짜기)다. 이곳에는 논이 있었는데, 둔전이었다고 한다.

유래8 산골

태을봉 아래 엘림복지원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즉 엘림복지원을 정문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있는 현재의 포장도로 부근이다.

유래9 선바위

노랑바위 서쪽 태을봉과 관모봉 사이에 있는 바위로 이 바위아래 절터가 있다. 즉 지상에 서 있는 바위라는 의미이다.

유래10 선암골

현 엘림복지원 북동쪽으로 접해 있는 골짜기이다. 즉 엘림복지원을 정문에서 바라보고 오른쪽 포장대로이니 군포농협에서 과정파출소에 이르는 길이 과거의 선암골이다.

유래11 태을봉

태을봉은 군포시 광정동, 산본2동과 안양시의 경계에 있는 산(해발 489m)으로 현재의 수리산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숙종 25년(1699)에 간행된 『과천지도』에는 안산의 수리산과 과천의 태을산이 따로 표기되었고, 광무 3년(1899)에 간행된 『과천군 읍지도』에도 안산의 수리산과 과천의 태을산이 따로 표시되었다. 이것은 수리산(취암봉)이 안산의 진산이니 당연하고 이때까지는 과천(군포)의 태을산이 또한 당연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1914년 3월 3군(시흥, 안산, 과천) 통합 후 위의 두 산이름은 하나의 수리산으로 부르게 되면서 수리산의 산이름이 안산의 수리봉(취암봉 : 395m)에서 태을산의 거룡봉(474.8m)을 수리산으로 1:50,000의 지형도에 옮겨 표기하므로 거룡봉의 이름은 표기할 곳이 없게 되고 태을산(489m)은 태을봉으로 부르면서 현재에 이르는 듯하다. 그러므로 태을봉은 본래 태을산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연혁

광정동 연혁 - 광정동 연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표 입니다.
1989.1.1 군포시 승격
1995.2.28 산본2동에서 광정동 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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